내가 원양어선을 탄 이유는 지극히 단순명료해. 난 군대를 너무 가고 싶었던 놈이었지. 근데, 신검을 받고나니 5급인거야. 신체가 부실 한 것도 아니고, 논리적 사고를 못하는 병신도 아닌데, 왜 5급이냐고? 3대 독자거든.

 

그래서 난 단기사병 대상자였는데,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장기대기로 면제통지서가 날아 온 거야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할 수도있겠지. 그렇게 가고 싶은 군대라면 지원을 해서 가면되잖아? 가고 싶은 군대이긴 한데, 굳이 지원을 하면서 까지 가고 싶진 않았어 미안.

 

어쨌든, 군대를 면제받은 나는 군대만큼 오지게 빡센 경험을 하 싶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선택한 게 원양어선이야. 주위에서 귀동냥으로 얻어들은 얄팍한 지식으로 원양어선이 매우 힘들다고 들었거든. 그리고, 갔다 오면 돈도 많이 벌수 있다고 하더라고. 1석2조 좋구나!

 

결심을 굳힌 나는 그날부터 정보를 수집했지. 그리고는 그 당시 유행하던 지역신문에서 선원모집광고를 발견하고, 바로 가서 면접을 봤어.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지역신문이나 구인광고에서 선원 모집을하는 회사는 99% 소개소야. 광고에는 큰회사처럼 선전하면서 마치 해운회사에서 직접 뽑는 것처럼 위장하지만, 결국 소개비를 받고 모집대항하는 소개소일 뿐이야. 법적으로 모르겠지만 원양어선을 타러 오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돈을 목적으로 타는 사람들인데 중간에서 등치는 건 좀 야비한 거 같아. 그 소개비가 나중에 본인월급에서 나가거든. 적은 돈도 아니고.

 

그렇게 소개소를 통해서,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통일호 밤기차를 타고 출발했어. 젊음의 힘! 이것으로만 버티기엔 그때 난 철도 없었고, 세상도 몰랐으며, 순진하기 까지 했지.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내내, 혹시 나 섬으로 팔려가는 거 아녀? 섬으로 팔려가면 죽을 때까지 두들겨 맞으면서 육지로도 못나온다고 하든데...하는 두려움과 걱정이 들었어.

 

서울에서 나와함께 같이 배를 타려고 출발한 일행들이 7명인가 8명인가? 가물가물. 모두 다 나보다 형님들이였고, 그중에는 마흔이 훌쩍 넘는 형님도 계셨어.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가는 일행들이라 그런지 서로에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지.

 

아무래도 세상을 나보다 더 많이 살아오셨던 분들이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자세한 기억까지는 안나지만 인생의 전환점을 삼고 싶어서 배를 탄다는 그런 이야기였어. 사업도 말아먹고, 이혼하고, 기타 등등. 보통의 마흔 나이에 사회에서 자리 잡고, 가정이 무탈하면, 굳이 원양어선을 타러 가진 않겠지. 그래서 배를 타러 오는 사람들은, 참 사연이 많은 거 같아. 사회의 밑바닥을 경험하고 그 밑바닥에서 올라오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배를 타는 것 같아. 아 이건 지극히 내 주관적인 견해이니, 오해하지 마시길. 배를 주업으로 삼고 열심히 사시는 분들도 분명히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나도.

 

멀리서 새벽이 오는 여명이 올 때쯤, 나를 실은 기차는 어느덧 부산에 도착을 하고, 우리 일행은 소개소 직원을 따라 어느 회사에 면접을 봤어. 원양어선의 구인란은 꽤 심각했지만 면접만 만만치 않더라고.

 

전과가 있나, 몸에 문신이 있나, 군대는 다녀왔냐.. 등등 생각했던 것보다 까다로웠어. 결국 처음 면접을 본 회사에서 나이가 어리고 군대를 안 다녀왔다는 이유로 탈락을 했고, 두 번 째 면접을 본 회사는 규모가 작은 어업회사였는데, 거기서 무사히 합격을 하고 같이 내려온 일행들과 아쉬운 작별을 했어. 무사히 잘 지내고 꼭 돈 많이 버시라고, 그리고 힘내시라고..!!

 

난 합격만 하면 바로 출항하는 줄 알았는데, 출항을 하려면 아직 보름쯤 더 있어야 한다면서 그동안 배를 수리하는 것 좀 도와주고, 이런저런 기본상식을 알아야 한다면서 숙소로 데려가더라고 그 다음날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어업 훈련소 라는 곳가서 훈련을 받기위해 등록을 하고, 내가 타는 배를 보러 갔지.

 

 



 

 

내가 타는 배를 처음 본 그 느낌은, 마치 낯선 여인네의 몸을 더듬는 느낌이랄까? 매우 흥분되고, 설레고, 두렵고, 떨리고..조심스레 출렁이는 배에 한발짝 딛는 그 순간이 매우 짜릿했어. 아 내가 드디어 배를 타는구나 하는 생각에 바짝 긴장도 되면서 그렇게 일주일 동안은 오전에 어업훈련소에서 교육을 받고, 오후에는 배에 가서 이런저런 잡일을 하면서 보냈지. 선장님도 처음 뵙고, 항해사, 갑판장, 그리고 햇또 (Head, 책임자의 일본식 발음).

 

난 갑판장이 왠 남자를 자꾸 야! 햇또~ 햇또~ 이러면서 부르니까 저사람 또라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햇또의 위치는 부갑판장쯤 되는 사람이더라고.

 

건강검진도 무사히 통과되고, 어업훈련소에서 훈련도 수료 하고나니 선원수첩이 나오더라고 이걸로 위급 시에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여권도 된다고 하니 마치 뭐가 된 거 마냥 으쓱해지는 기분,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지.

 

출항날짜가 결정되자. 제일 걱정 되는 게 그녀 였지, 사실 배 타러 오기 전부터 눈물 쏟아내면서 말렸는데, 내 인생 내가 하고 싶은거 하면서 살고싶다고, 우기면서 온 거였거든. 그 날 저녁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서 '며칠 후 출항하니, 나 잊고 열심히 살아라, 좋은 넘 있음 빨리 만나고' 라면서 그녀를 위로했는데 그 다음날 그녀가 부산에 온거야. 죽으러 가는 사람도 아닌데, 그녀는 펑펑 울면서 나쁜 넘이라고 너 가면 다신 안본다고, 번화가 남포동 거리에서 주저앉고 우는, 마치 영화처럼 말이지.

 

차분히, 그녀에게 어차피 군대 가는 셈 치면 되지 않겠냐, 군대는 2년6개월이지만 난 1년만 가따온다. 군대보다 짧지 않냐~ 라는 말로 그녀를 설득했고 우리는 하루 밤을 같이했지.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군대에 군 담배 라는 게 있지. 국방색 띠로 [면세] 라고 붙어서 나오는 담배, 그게 외항선원용도 나오더라고. 그리고 중요한 건 면세. 그때 외항선원용 담배로 판매되던 담배가, 88 / 디스 / 글로리 / 한라산 따위였는데 군담배와는 다르게 주황색 띠를 둘렀고, 외항선원용이라 찍혀서 나왔어. 그리고 일단 가격이 참 착해.

 

 

 



 

회사에서 담배 얼만큼 필요하냐고 해서, 88 한 박스를 주문하고, 장기간 항해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러 항해사와 같이 자갈치시장으로 나갔어

 

외항선원들이 필요한 물품을 사는걸 사시꼬미(일본어 시코미しこみ의 잘못)라고 불렀어. 빤스 30개, 난닝구 30개, 츄리닝, 반바지, 칫솔, 면도기 기타 등등. 두 손에 한 짐 가득 샀는데, 항해사는 픽 하고 웃더라고, 아주 나중에 안거지만 그런 거 다 필요 없었어. 역시 경험이란 무서운 거야.

 

그날 무사히 만선을 기원하면서 우리가 타는 배에서 제를 올리고, 낮부터 시작된 술자리가 밤늦게 까지 이어졌어. 그렇게 출항 날이 다가왔고 나를 실은 500톤의 [진양호] 는 천천히 부산항을 출발했어.

 

 

 

 

아... 남태평양!

 

출항 전에 한 보름정도 숙소를 같이 쓸때만해도, 항해사나 갑판장이나 햇또나 그다지 무섭거나 위압감을 준다거나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어. 뭐랄까 그냥 동네에서 흔히 볼 수있는 형들 정도? 허나, 그건 다 위장술에 불과 하다는 걸 배가 부산항을 떠나고 10만에 알게 된 거지.

 

출항 전에, 사람들에게 욕이나 강압적인 분위기를 풍기면, 배를 안탄다고 할까봐 그다지 터치를 안 하더니 막상 배가 출항하고 나자마자 바로 반말과 욕설이 바로 튀어나오더라구. 자꾸 군대랑 비교해서 좀 그렇긴 한데, 군대는 그래도 나이 먹고 가면 대접이라도 해준다면서? 고깃배는 그런 거 없어.

 

철저하게 계급이고, 반말과 구타는 그냥 기본 옵션이야. 나도 눈물 나게 맞아 본 적도 있고.

 

어쨌든 배가 출항과 동시에 우리가 탄 배는 대한민국에서 정확히 반대쪽에 있는 남태평양의 아르헨티나로 향했지. 남태평양하면, 대충 감이오시나? 시속 10노트 내외의 원양어선으로 하루24시간 쉬지 않고 내달려서 45~50일 정도 걸리는 동네가 바로 아르헨티나야.

 

보통 우리의 상식으로 아르헨티나? 하면 비행기타고  가는 동네 라고 생각하는데 그 거리를 무려 45일에 걸쳐서 가는 거야. 얼마나 지루하냐면 보통 배에서 깡깡이(녹슨 부분을 벗겨내고 새로 페인트를 덧칠 하는 것)를 하는데, 대한민국에서 아르헨티나 갈동안 배가 새것으로 변해. 환장할 노릇이지.

 

도대체 어떤 물고기를 잡는데, 거까지 가느냐면 바로 "오징어" 를 잡기위해 가는 거야 .

 

오징어? 동해에서도 많이 잡히는데? 허나, 우리가 모르게 오징어는 다양하게 쓰이더라고, 대표적으로 여자들 화장품에도 쓰이고, 가축의 사료로 같은 데에도 쓰이고. 그런 오징어의 대표적 어장이 바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있는 남태평양이야. 그 동네에선 오징어를 안 먹어서 우리나라 선단들이 그쪽에서 많이 어획을 해.

 


한국에서 남태평양을 갈 때, 적도를 통과하거든, 적도근처의 바다가 얼마냐 더운지 지금도 안 잊혀져. 평생 그런 더위는 아마 다시 겪기 힘들거 같아, 딱 빤스만 하나입고 갑판위에 있어도 땀이 좔좔 흐르고, 잠을 못 잘정도로 미치도록 더워.

 

원양어선의 시설은 매우 열약해. 선원들 잠자리도 딱 한명 들어가서 누우면, 뒤척일 공간도 없을만큼 정말 협소해. 그런 더위에서 옆에 누가 오면, 사람이 내뿜어내는 열기조차도 짜증이나, 그래서 자연스레 피해. 서로를.

 

왜 신영복 교수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을 읽어본 횽아들은 연상할 수 있을 거야. 감옥이나 배안이나 별반 다를 게 없으니까.

 

 

 

 

그리고 진짜 무서운 게 바로 멀미. 내가 멀미를 한달 넘게 했어. 멀미 해본 사람들 그 고통알지? 머리 속에서는 수박만한 돌덩이가 지나다니고, 속은 바퀴벌레 수백마리가 내장을 헤집고 다니는 그 환장하고 미치는 증상. 그걸 무려 한 달을 넘게 했어.

 

그렇지 않아도 걱정이 되서, 떠나기 전에 귀.밑.에. 붙이는 멀미약, 알지?? 나름 준비한다고 준비를 했는데, 그딴 거 다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돼. 밥 먹고 토하고 밥 먹고 똥물까지 한번 쏟아내고. 이 심오한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다보니까 어느새 내가 바다의 출렁거림과 하나가 되어 있더라고. 나중에는 바다의 출렁임에 맞춰서 똥 쌀 때도, 그 스므스한 리듬이 맞추는 경지에 올랐지. 넓디 넓은 대해에서 달리는 배의 난간을 부여잡고 똥 싸는 기분~ 아무도 모르지? 그 쾌감과 스릴은 느껴 본 자만이 가지는 우월함!

 

부산을 출발 할 때 2월말이었는데, 목적이 오징어어장에 도착을 하니 4월 인거야 벌써.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오징어 배는 굉장히 밝은 등(집어등)을 켜고 오징어를 배주위로 유인한 다음 조상기란 기계를 이용해서 어획하는 시스템이야

 

 



 

 

위 사진은 연근해선으로 조금 규모가 작은 배인데, 머 대충 이런 배가 좀 크다고 생각하면 오케이. 사진에는 잘 안 보이는데 노란 롤러 밑에 있는게 조상기란 기계야. 낚시 줄에 야광찌를 묶어서 수심 100~200m 정도 까지 내려가서 오징어를 낚아 올리는 거지.

 

목적지인 오징어 어장에 도착을 해서 본격적으로 오징어를 잡기 시작했어. 한국을 떠나오면서, 미리 미리 교육받고 머리 속으로 시뮬레이션도 그려봤지만, 역시 실전에 돌입하니 뜻대로 안되더라고. 출렁이는 바다위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낚시줄 끼리는 서로 엉키고 오징어가 올라오면서 먹물튀기고, 살겠다고 발버둥 치며 빨판으로 서로 꼭 끌어안고. 막상 실전에 돌입하니, 역시 서툴고 어려웠어. 무엇보다 집어등의 그 열기가 죽을 맛이야.

 

내가 탄 배는 집어등을 거의 다 켜놓고 작업을 했는데, 그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살이 탈정도야. 무더운 나라에서, 그 뜨거운 집어등의 열기와 싸우며, 하루하루 오징어 란넘과 사투를 벌였지. 이때까지 만해도, 난 모든 게 신기하고 재미있고 즐거웠어. 오징어 어장의 성어기가 보통 5~7월까지야. 그 석 달을 작업하려고, 왕복 석달을 바다를 가로지르며 대양을 넘다드는걸 보면, 참 인간이 대단하다 싶기도 해.

 

배를 타면서 참 적응하기 힘들었던 게, 먹는 거였거든, 원양어선은 쌀과 물고기를 제외하고 몽땅 냉동식품이 부식이야. 냉동 김치 해동해서 먹어봤어? 이건 김치도 아닌 것이 김치같기도하고. 싱싱한 채소는 감히 꿈꾸기도 힘들고..냉동파, 냉동양파, 냉동마늘 등등등. 점점 내몸이 냉동으로 굳어가는 느낌이 들더라고.

 

배에서는 식수와 기름이 생명과도 같아. 먹는 식수는 바다 물을 끌어올려서 기계로 정화시켜 식수로 사용하지 맛?? 죽을 맛이지. 아주 그냥.

 

그런 물도 함부로 쓸 수가 업어, 하루 동안 식수로 정화시키는 양이 적어서, 먹는 걸 제외하고는 그 어떤 다른 용도로 식수를 함부로 쓰면 안돼, 빨래 목욕 죄다 바닷물로 하는 거야.

 

바닷물로 샤워하면 일단 일반 비누는 거품이 나질 않아. 그래서 배에서는 비누를 안 써 빨래, 목욕 모두 샴푸를 이용해서 해. 근데, 바닷물로 씻으면 개운함이 없어. 그 미끄덩거리는 삼푸기가 가시질 않아.. 그래서 씻고 나도 찝찝하지. 이빨 닦을 때만 일반식수를 쓰긴 해. 부산에서 떠나올 때 비누 한빡스 사왔는데 젠장.

 

잡은 오징어는 펜(사각형태의 쇠로 만든 틀)에 다대(보기 좋게 담는것)를 해서 급냉(급속 냉동 창고)에 넣고, 5시간 후에 꺼내서 다시 어창으로 옮기지. 그렇게 어창이 꽉 차면 운반선이 와서 전제를 해. 고기배가 운반선에 잡은 고기를 넘겨주는 걸 [전제]라고하지. 그렇게 한번 전제를 해주면 전제비라고 해서 따로 돈이 나와. 그걸로 선원들이 술도 마시고 하는 거야. 이것의 무한반복이야, 그걸 석 달동안 기계처럼 매일 하는 거야.

 

한 달이 지나면서 슬슬 외로움과 그리움이 생기기 시작했어. 밤이면 밤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을 밤하늘위에 띄어놓고 대화를 하는 버릇이 생기더라고. 눈뜨면 어딜 봐도 항상 같은 풍경과, 하루 24시간 늘 같은사람과, 기계처럼 반복되는 작업등. 외로움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 가 없는 구조지. 게다가 너무 멀자나 한국하고는.

 

무더위와 외로움과 고된 노동으로 하루하루 지쳐갈 무렵 뜻 하지않는 사건이 일어 났어

 

 

 



 

 

우리가 탄 배는 70년대 일본에서 건조된 배인데, 그 배를 회사에서 사온거야. 통상 어선의 수명을 30년으로 본다고 하는데, 이미 한계점에 도달한 아주 낙후된 배 라는 거지. 무리하게 운행했던 탓인지, 배의 엔진이 고장난거야. 기관장이 한참을 수리를 했는데도 결론은 육지로 가야한다는 쪽으로 내려지고, 우린 생각지도 못한 육지를 방문하는 기회를 얻은 거야. 참고로, 원양어선은 육지로 가는 경우가 제한적이야. 고기를 잡는게 목적이니 만큼, 육지를 갈 일이 없는 거지. 생각해봐 육지에 물고기가 있을 리가 없잖아.

 

태어나서, 외국이라곤 단 한 번도 가본적도 없는 넘이, 가까운 일본 동남아도 아니고, 지구반대편 아르헨티나 라는 나라를 가보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무척이나 설레더라.

 

배를 도크에 대고, 밀린 빨래와 청소등을 하고 있을 무렵, 배 안으로 왠 외국여자들이 올라오는 거야. 원래 배는 속설들 참 많은데, 그중에 하나가 배는 여자를 태우지 않아. 여자가 함부로 올라와서도 안 되고, 그런 배에 외국여자들이 우루루 몰려오더니 브릿지로 가서 항해사와 농담을 하면서 웃는 거야. 언뜻 들어도 영어는 아닌 것 같은데, 항해사는 유창하게 그녀들과 대화를 하더니

 

손가락 검지로 나를 지목하더라고. 그러더니, 여자 일행 중 한 여자가 나에게로 오더니 팔장을 끼고는 "컴~온. 컴~온" 이러는 거야. 이게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 하고 있는데. 항해사가 나를 부르더니 500달러를 주면서 "가서 담배 몇 보루 가지고 저 여자 따라가" 하더라고. 난 시키는 대로, 내 숙소로 가서 담배 10보루를 를 주섬주섬 챙겨들고, 그 여자를 따라 나섰지.

 

 



 

 

말이 통해야 대화를 주고받을 텐데.. 이건 난감 한거야. 한 20분 걸었을까? 한국의 아파트 보다는 작은 건물인데, 그 건물 안으로 그녀는 나를 팔을 잡고 들어오라는데.. 겁이난 건지 내가 머뭇거리자 그녀는 해맑게 웃으면서 "컴~인" 거리며, 양팔을 벌려 웃더라고. 난 그녀의 그 해맑은 미소를 믿기로 했어. 낯선 여인의 집에 방문한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리며 뻘쭘하게 앉지도 서있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그녀가 손짓으로 나를 부르더니 씻으라고 말하는 거 같았어. 마치 한국말로 "샤워해~~" 라고 말하듯이..

 

근 석 달을 찝찝함을 느끼면서, 바닷물로 씻어야했던 나는, 오랜만에 뽀드득거리는 샤워를 하고나니 너무 너무 좋더라고.. 실로 감격에 겨울만큼. 깨끗하게 씻고 나오니, 그녀가 궁금하기 시작해졌지. 용기를 내서 물어봤어 그녀에게.

 

"왓쳐네임~~?" 그녀는 짧게 웃으면서 "이사벨라" .그때부터 난 그녀를 "헤이~벨라" 라고 불렀지. 문득, 궁금해 지는 게 이 여자가 몸을 파는 매춘부인지, 아님 숙소를 제공하는 숙박업자인지 말이 통해야 물어라도 볼 텐데, 당체 말이 안 통하니 답답해 죽겠더라고. 그래도 그녀와 난 배에서 밀린 빨래를 들고 그녀의 집으로 가서 빨래를 하고, 그녀와 함께 아르헨티나 어느 소도시의 거리를 구경하러 다녔지. 신기했던 게, 거기도 수박이 있더라고. 내가 수박을 참 좋아하거든 오랜만에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사서 그녀 집으로 가서 밥도 해먹고, 즐겁게 지냈지만 너무도 아쉬운 건 대화가 통하질 않는다는 점이었지. 그녀의 그 맑은 미소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참 답답하기만 하더라고. 즐거운 시간은 빨리 지나 가는 거 같아. 안타깝게도 우리배가 수리가 다 되고, 이제 또다시 바다로 나갈 시간이 다가왔어.

 

나에게 행복한 일주일을 선사해준 그녀에게, 난 어떤 식으로 보답을 해주고 싶었고, 배로 가서 항해사한테, 부탁을 했지. 오백달러와, 양주 두병, 그리고 몇 보루의 담배.. 그리고 내가 차고 있던 목걸이.

 

행복을 선물했던 그녀에게 보잘것없는 적은 가치이나, 내가 줄 수 있는 것들이 그 것 말고는 없더라고 배가 떠나는 날 그녀는 친히 항구에까지 나와서 나에게 그 거부하기 힘든 미소로 작별인사를 건냈고, 나도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어.

 

"굿바이.. 이사벨라..."

 

 

 

꽁치잡이

 

또다시 우린 무더위와 거친 노동의 일상으로 돌아갔고, 내가 한국에 돌아가서 오징어를 먹으면 사람이 아니다! 라고 오징어에게 분노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텼지. 그렇게, 오징어 성어기가 끝났고, 우린 꽁치를 잡으러 북태평양으로 배를 돌렸어 한달반을 지루하게, 달렸으니 또 그만큼 지루하게 가야겠지. 아 지겨워.

 

올 때 한달 반이 걸렸으니, 갈 때도 그만큼 걸리겠다는 건 이미 예상하던 바였지만, 그래도 참 지루하던 시간이었어.. 다행인건 북태평양은 그다지 덮지 않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될 뿐. 항해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우리를 긴장시키기 충분했지.

 

"꽁치 잡는 순간부터 죽었다고 생각해라.."

 

오징어 잡을 때와 꽁치를 잡을때는 시스템이 완전 달라. 아무리 바빠도 오징어를 잡을 때는 잠은 꼬박꼬박 잤었지만, 꽁치를 잡을 땐 정말 초죽음 직전까지 도달해. "전원공격. 전원수비" 이 한마디로 정의 하면 쉽게 이해가 될까?

 

 

 



 

 

바닷 속의 고기는 돈이 아니야, 그걸 잡아 올려야 돈이지. 고기배의 목적은 고기를 잡는거고 고기를 잡기위해서는 잠을 잘 수가 없어, 적어도 꽁치 배는 그래.

 

간략하게 꽁치를 잡는 방식을 설명하자면 해가 지고난 후 어두운 망망대해를, 배의 선수와 포드/스타포드(배의 좌우현)에 달린 대형서치라이트로 바다를 비추면서 천천히 미속으로 전진을 하지. 그럼 그 불빛에 반응하는 꽁치가 바다 위를 솟구쳐. 이 모습이 사실 장관이야,

 

그럼 배를 정지 시킨후, 천천히 서치라이트를 이용해서 꽁치를 배 근처로 유인해오지. 어느 정도 배에 꽁치가 몰렸다 싶으면, 배의 우현에서 대형 그물을 바다에 넓게 퍼트리고, 꽁치를 가두는거야. 그리고는 그물을 조여서 꽁치를 그물 안에 던지면, 피시펌프를 통해서 쭉 빨아들여 그럼, 고기는 데끼( Deck : 갑판)로 바닷물은 다시 바다로.

 

그렇게 한번 그물에 잡히는 꽁치가 대략 40톤 이상이지. 원양어선은 원근해어선과 달라서 잡은고기 는 바로 배에서 처리를 해야 해, 잡은 꽁치를 10kg의 종이박스에 보기 좋게 담아야하지. 오징어 때와 마찬가지로 [다대]해서 [급냉] 을 거쳐 어창으로 가는 과정은 똑같아.

 

꽁치 50톤이면 10키로 박스로 5천개야. 그걸 30명 정도의 선원들이 처리를 하는 거지, 아침 해 뜨기전에 꽁치를 뜨면, 그걸 다 처리하면 이미 해가 져있어. 그러니 잠을 잘 수가 없는 거야.

 

인간이 극한의 상황 속에서 얼마나 위대해 지는지 난 거기에 몸으로 체험했어. 영하 50도의 급냉 창고에 달랑 고무 장갑끼고 들어가서, 이마에 땀이 나도록 일한다면, 믿어져? 24시간 단 1분도 못자면서, 3~4일을 내리 일한다면, 과연 상상이 갈까? 로프에 몸을 묶고, 10미터가 넘는 파도를 맞서면서, 그물을 당기는 그 치열한 삶의 현장을 누가 본적이 있을까?

 

담배를 하루에 서너갑씩 피워대고, 커피를 사발로 마셔도, 그 쏟아지는 잠을 이겨 내는 게 정말 고통이야. 다들 돈이 목적이기 때문에 꽁치를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잠을 떨쳐내면서 꽁치를 잡아야 하는 사실이 슬픈 거지.

 

그렇기 때문에, 뱃놈들은 자연히 거칠어질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야.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말에 나는 상당히 동의해, 물론 그 환경을 선택 하는 건 사람이긴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뱃사람 하면 가지는 선입견이 '아 마도로스. 화끈하고 화통하고 사내다운..' 뭐 이런 걸 텐데 내 경험에 의하면 저건 다 환상에 불과해.

 

 

 



 

 

육지에서야 그렇게 보일 수 도 있지만, 적어도 바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아. 조금이라도 내 몸 편하기 위해서, 남의 눈치를 보게되고, 이간질을 하며, 거짓말까지도 자연스레 하게 된다고. 그러다보면 싸움은 필연적으로 발생하지.

 

같이 배를 탔던 형님 중에, 좀 특이한 사람이 있었어. 이름은 지금 기억하지 못하지만. 처음 배를 탈 때 만해도, 그 형님의 인상은 참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레 그 사람의 본성이 나오더라고, 그게 본성인지 극한의 상황에서 나온 자기방어기제 인지는 지금도 의문이야.

 

결국 유난히 농땡이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그 모습에 화가 난 햇또는 작업도중 그 형님에게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고, 서로 칼과 낫을 쥐고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대치한 상황까지 간 거야.

 

근데, 신기한건 누구하나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야, 정말 그 누구하나. 몇 개월을 그 작은 공간에서 같이 동고동락하던 사람들이, 가족보다 더 가깝게 지낸 그런 사람들이 싫어하는 감정이 생기기 시작하니, 나 몰라라 하는 거야. 사실 나 역시 침묵을 지키긴 했어. 싸움은 햇또의 사과로 마무리 됐지만, 그렇다고 햇또가 선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건 아니야.

 

강한 자에게 참고, 약한 자를 눌러버리는 그 인간 본연의 가장 더러운 모습이 그 안에서도 있던 거지. 그런 형님들은 모습이 한동안 날 우울하게 만들었지. 그 이후 꽤 오래 난 말을 잘 하질 않았어.

 

8월~10월 북태평양의 꽁치를 잡는 성어기야. 이 석 달 안에 최대한 많은 꽁치를 잡아야 되지. 이 석 달 동안은 정말 씻는 시간마저 아까워. 얼마큼 빠르게 잡은 고기를 처리 하냐에 따라서 어장을 이동하는 그 잠깐 시간에 잠을 자는 시간이 주어지는 거지.

 

선장이 "잠깐 눈 좀 붙여라" 라는 말이 떨어지면, 씻고 옷 갈아입고, 이런거 없어. 그 자리에서 바로 누어서 자는 거야. 누군 그냥 그물위에서 처자고, 누군 종이박스를 베개 삼아 자고. 또 누군, 바닷물이 흥건하게 젖어있는 갑판위에 그냥 쓰러져 자고. 온몸에 꽁치비늘이 가득하고 토할 거 같은 비린내가 온몸에 진동하지만, 잠을 자야하는 본능을 그 따위 걸로 막을 수가 없어.

 

가끔 작업을 하기 힘든 폭풍우가 오면, 피항을 가지, 일본열도의 제일 가까운 3해리(약 5.5km지점) 까지 피항을 가는데, 눈 좋은 사람을 저 멀리 지나가는 차도 보이고, 사람도 보이거든. 그럼 또 미치는 거야. 육지 가고 싶어서.

 

꽁치를 잡을 땐 오로지 딱 하나만 생각해, 빨리 처리하고 자야..제발 좀 자자!!근데, 여유가 생기면 생각이 많아져. 그 때 생긴 버릇인지 모르 겠지만, 그 후 난 고민이 생기면 미친듯이 일을 해, 그래야 잡생각이 없어지더라고.

 

 

 

귀항

 

 



 

 

 

바닷속의 꽁치를 모조리 잡을 것같이 하루하루 꽁치를 잡다보니, 어느새 11월이 다가온 거야. 근데, 정말 희한하게 엊그제까지 그 많던 꽁치가 11월이 되니 거짓말처럼 사라지기 시작했어. 마치, 마술사가 손안에서 카드를 없애듯이. 정말 참 신비롭지 자연은? 드넓게 펼쳐진 바다 저 끝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선수에서 바라보면, 자연의 위대함을 알게 되더라. 배를 타면서, 종종 선수에 혼자서서 (마치 타이타닉의 한 장면처럼) 떠오르는 태양을 보곤했는 데 참, 자연의 위대함이란 그 어떤 수식어도 붙이기 힘들만큼 아름답고 장엄하며, 경이로워.

 

가끔은. 정말 아주 가끔은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서 다시 한 번 배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너무도 힘들고, 외로웠지만 그래도, 그 바다 끝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참 많을 일들을 겪고, 때론 분노하고, 때론 실망하며, 한편으로는 이 엄청난 과정을 겪어 내온 내가 기특하기도 했어. 배를 한국으로 돌리고, 한국으로 오는 일주일동안 내가 출항했던 순간부터, 그때까지의 모든 일들을 머릿속에서 천천히 리와인드 시키면서, 곱씹어 봤지.

 

누군가는 나에게, 어린놈이 참 기특하네.. 하면서 칭찬 했을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대한 환상과 꿈이 가득했던 나에게, 인생의 선배들이 보여준 인간의 본성은 참 실망스러웠어. 앞으로 한참을 더 살아가야하는 청년에게는 그 일 년의 경험들이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던 거지..

 

살아오면서, 후회라는 걸 별로 해보지 않았지만, 그 때 그 선택은 아직도 후회로 남아있지. 어차피 나쁜 건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알게 되는 게 세상사라지만, 그게 내 선택으로 경험했닫는 게 여전히 후회로 남아.

 

누군가에겐 특이하고, 재미있고, 다양한 삶의 경험으로 들리겠지만.

 

무사히 배가 한국으로 돌아왔고, 나와 같이 배를 탔던 형님들 중 한분은 아직까지 소식을 전하면서 아주 가끔 만나면, 소주잔 기울이며, 그 때 그 이야기를 할 것 같지만 막상 만나면, 누구도 먼저 그 애기를 선뜻 꺼내지 않아.

 

아마 서로 감정은 비슷했던 모양이야. 여기까지야. 읽어줘서 고마워.

 

 

 

 

간단 요약


홧김에 출항 -> 남태평양행 -> 배고장 -> 아르헨티나서 백마랑 붕가붕가 -> 꽁치잡이 3박4일 지옥체험

-> 배위에서 칼이랑 낫들고 싸움 -> 간신히 귀환.


10년전 기준으로 1년에 7천만원이니까 지금돈으로 따지면 1억 5천쯤 벌어온듯...


교훈

원양어선 타는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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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날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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