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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2002년 싸이 데뷔하고 공연 무대 설 일 별로 없을 때 김장훈이 자기 공연에 싸이 게스트 많이 세웠던 건 방송에 많이 나온 얘기(10년 전 얘긴데 이때 공연 마일리지 얘기 여태까지 함).

그때부터 김장훈이 싸이의 무대 폭발력과 열정을 높이 사서 급기야 연말 대형 공연 만들어주겠노라 제의.



- 2003년 연말 김장훈이 본인 공연을 안 하고 싸이 무대에 기획과 마케팅 몰빵. 그때 싸이는 히트곡이 새, 챔피언 두 개뿐이라 단독공연 힘들 때였는데, 연출력으로 커버. 싸이 단독 공연 역사상 최대 대박 성공(이후로도 이때 기록 못깸). 우리나라 몇 안되는 연말 단독 대형공연 가능 가수 리스트에 올라감.


- 그런데 그 공연 직후 매체 인터뷰에서 김장훈이 "연출 만족 못한다"고 한 걸 보고 싸이가 팬페이지에 "연출자라는 인간도 내 공연에 만족 못했다는데" 운운하며 잔칫상 엎음. 김장훈이 "내 연출이 부족하다는 뜻이고, 너는 충분히 잘 했다"며 어르고 달램.


- 바로 그 다음해 2004년부터 싸이가 김장훈에게 자기 혼자 대극장공연 하겠다고 함. 김장훈은 자기가 10여년 동안 자기 공연 다른 공연 연출하면서 시행착오겪어 해놓은 걸 한방에 혼자 하겠다는 거 보면서 벙찜.


- 결국 혼자 감당 못해 김장훈 공연 카피. 김장훈이 연출해줬던 것뿐 아니라 단독 공연 때 했던 아이템까지 차용. 김장훈이 빡쳐서 싸이 불러내 따지고 싸움(딱 이 부분이 놀러와 내용). 이후로 계속 물량 공세로 경쟁했다고 우스갯소리하던데, 사실은 김장훈은 계속 더 새로운 거 만들어서 죽여놓겠다는 태도, 싸이는 나도 할 수 있다며 계속 따라하는 태도. 결국 서로 안 봄.

 


- 그러다 2007년에 싸이 군 문제 터지고 김장훈이 달려감. 그때 싸이가 처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법원에 뭐 내고 그러던 때였는데 김장훈이 "그러지 말고 딱 접고 남자답게 다녀와라, 돌아와서 다시 하자, 도와주겠다"고 함. 훈련소 앞까지 배웅.


- 싸이가 만들어둔 노래 중에 김장훈이 '소나기' 받아서 2008년 봄에 발매.


- 싸이 군대 있는 동안, 김장훈이 2년간 꼬박 자기 공연, 행사, 대학축제에서 싸이 노래 한 곡씩 꼭 부름. '소나기' 부를 때마다 싸이 얘기 함. 사람 쉽게 버리지 말고 크게 포용하면서 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그만큼 에너지 넘치는 딴따라도 흔치 않다고, 내가 늘 대신 노래해주고 얘기해서 안 잊혀지게 하고 제대 후에 다시 설 자리 만들어주겠다고 함. 이때 김장훈 안티 많이 생김.


- 2009년 7월 싸이 제대. 8월에 싸이가 김장훈에게 티비 첫 생방송인 김정은의 초콜릿 무대 연출 부탁. 김장훈이 한참 바쁠 때고 다른 공연 연출은 당분간 안 하겠다고 한 때여서 고민하다가, 싸이 같은 애들이 좋은 공연을 해야 대한민국 공연계가 발전할 수 있다는 대의 하에서 도와주기로 함. 무대 다 연출해줌. 이때 고민하던 글 다 있음.


- 2009년 9월, 제대 두 달만에 싸이와 김장훈 합동으로 공연기획사 '공연세상' 설립하고 '완타치' 전국 투어 계획. 이후 동고동락하며 공연과 방송 함께 함. 싸이 이미지 쇄신에 결정적 기여.



- 완타치 공연 연출은 김장훈이 다 했는데, 화려한 연출과 효과와 물량은 싸이쪽에 훨씬 많이 배치. "내가 연출하면서 내꺼 더 멋있게 만드는 거는 좀 쪽팔린 일 같더라"며 대신 자기는 감동으로 승부하겠다고 함. 심지어 97년 발표 이후 한 번도 빠짐없이 앵콜 마지막곡으로 하면서 가장 많은 화력을 퍼부었던 '노래만 불렀지'도 포기. 공동 공연인데 자리 노래로 방점 찍는 거는 좀 아닌 거 같다는 이유.


- 2010년 싸이 YG와 계약. 매니지먼트는 YG에서 하고 공연은 전처럼 '공연세상'에서 하는 걸로 정리. 2011년 연말까지 공동 공연.


- 싸이는 공연 멘트도 몇 년 동안 똑같은 것밖에 못하던 스타일인데, 김장훈이랑 같이 하면서는 대놓고 멘트까지 카피. 공연은 당장 증거자료 찾기 어렵지만, 가장 쉬운 예를 들어 2011년 6월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때 미러볼 입고 공연했던 것 보면 무대뿐 아니라 노홍철이랑 컨셉 짜면서 하는 얘기까지 그대로 복사. "야!"로 시작하는 대사부터 말투 제스처까지 김장훈이 공연 짜고 사람들에게 설명하던 말 100% 암기임. 이런 것까지도 배운 거 사회나와 써먹는 거라 하면 스스로 생각하고 뭐 만들면서 사는 사람들은 ㅂㅅ일듯.



- 가끔 김장훈이 "사람이 말이야, 창의적으로 서로 업그레이드하면서 같이 발전하고 그래야지, 너는 그렇게 오래 보고도 고렇게밖에 못따라하냐"는 식으로 타박. 웃기게 말해서 분위기는 좋았지만 이제 와 생각하니 썩은 속 다 보임. 배워서 자기도 하겠다는 거가 싫은 게 아니라(사실 따라하겠다고 덤비는 게 맘에 들어 여태 싸이 데리고 온 거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고민 없이 베껴서 단순히 '써먹는' 것, 자기 가치로 승화하는 과정 없이 따라하면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부분에서 김장훈이 많이 답답해함.


- 2012년 3월. 그동안 긴 세월 동고동락하던 공연세상 대표가 서울기획으로 이적.


- 화제의 그 놀러와는 2012년 5월 14일 방영. 방송국 파업 일정 고려하면 3-4월에 녹화했을 듯. 정황상 싸이와 공연세상 대표가 딴생각하고 옮기는 시점에서 김장훈이 억지로 불러내 화해의 자리 마련한 걸로 보임. 한참 지난 옛날 얘기 농담처럼 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좋게 가자는 방향으로 마무리. 그래도 여기까지는 종종 싸우는 형제가 또 화해하고 이해하는 걸로 메이킹되었는데 싸이는 이 즈음부터 발길 끊은 듯 보임.


- 2012년 8월 싸이 단독 공연을 서울기획과 YG에서 주관. 공연 내용 중 상당수를 김장훈것 카피. 김장훈은 이즈음 사람 때문에 힘겹다는 말을 가끔 함.


- '올해 스텝 빼가서 주먹다짐까지 했다'는 얘기 있지만 사실무근. 싸이가 놀러와에서 2004년에 처음 싸울 때 얘기하면서 '장훈이형이 발차기를 무대에서만 하는 게 아니거든요ㅋ'라고 한 말이 와전된 거임. 올해 그런 일들 있던 시기를 살펴보면 김장훈은 오히려 독도와 기부를 비롯한 일들에 더 매달리면서 크게크게 넘어가려 하고 있었음.


- 이상호 기자 방송과 증권가 찌라시 때문에, 싸이가 표절 많이 하고 스텝들 빼가서 자살시도한 것처럼 보도가 됐는데 딱 그거라고 말 수는 없음. 표절과 스탭 문제가 있었던 건 맞지만 그것 때문에 포기할 일이었다면 여기까지 하지도 않았음. 이상호 기자는 10월 3일 중국 상하이 기자회견 때 한 명 있던 한국 기자였고, 김장훈이 안면 있는 기자랑 만나 얘기하다가 평소 빡쳤던 얘기 비공개로 한 것. 마침 일이 터지자 이상호 기자가 바로 공개.


- 그래도 싸이와 그 주위 일들로 올해 뒤통수 많이 맞고 한국 공연판을 떠나고 싶은 심정이 든 건 확실. 그래도 본인이 떠안고 가려 함. 앨범 발매, 독도, 위안부 문제, 중국녹색성장 프로젝트(사막에 나무 심기) 등 할 일이 차고 넘침. 원래 중국 공연은 병행하려던 거였는데, 아예 한국 공연은 당분간 접고 그쪽에서 다시 시작하는 걸로 가닥을 잡은 것 같음. 미투에 10월 4일 새벽에 올린 다음 글 참고.

"집에 왔습니다. 역시 좋네요 ,단 2일 간의 중국행이었지만 잠 좋은, 기적같은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들이 확연해지고 안정적임 속에, 단단해지는대로 보따리를 풀어놓죠ㅎ 내일부터는. 부지런히 앨범 막바지 작업으로.. 5년만의 발라드 신곡! 설레고 설레고..설레고 그래요~ 근데.. 오늘 또 말못할, 인간사의 뒤통수를 맞았는데 올해 참 평생 당할 배신을 다 겪는듯ㅎ 머리로는, 내탓이다 내탓이다 하면서, 가슴은 참 쓰리고 분해요. 과연 신의라는 게 세상에 있는 건지, 나 또한 나도 모르게 그런 사람인지, 생각해요. 공연은 핑계고 그래서 한국을 떠나려는지도.. 그래서 편들께 너무너무 미안해요. 12/10/4 1:45 AM


- 그날 아침, 김장훈이 오래 전부터 준비해오고 막판에는 노후보장보험까지 깨서 준비한 위안부 광고가 뉴욕타임스스퀘어에 게재됨. 국가적 문제일 뿐 아니라 세계 여성 인권 문제이기도 하다며, 국제적 분위기를 타서 밀어붙여야 한다고 새벽부터 뉴욕 지인에게 부탁해 사진받고 글 올리고 현실화 다짐. 시간 보면 중국 다녀와서 밤샌듯.


- 그런데 그날 하루 종일 싸이 시청앞 공연 얘기로 모든 언론 도배. 서울시에서 예정된 다른 공연까지 취소하면서 갑자기 실행한 데다가 상상 이상으로 기사가 폭주함. 어느 블로거의 글에 따르면 '검색해 보았더니 4일에 위안부 광고 기사는 19건으로 1페이지도 안 되었으며, 싸이 무료공연 기사는 31페이지를 꽉 채웠고, 연관 검색어 포함하면 몇백 페이지였다'고 함. 첫날 이슈가 못되면 주제 자체가 묻히는 현실상 우리나라에서의 공론화는 물건너감. 다음 타깃으로 유럽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인데 암담. 시에서 개인 공연 개최해주고 온나라가 말춤 추는 사이에 현 세대가 꼭 해야 될 일은 뒷전 아니라 똥통. 이 난국을 타개하려고 뭔가 또 하던 와중에 훅 가는 소리 들었을 거임.


(이상이하 모두 팩트고, 여기서 딱 한 가지만 추측하겠음. 이건 위험한 추측이긴 한데. 근거 하나는 4일 새벽까지도 배신은 당했지만 희망적인 방향으로 풀려는 의지를 보이던 사람이 불과 그날 밤에 쓰러지고, 사람같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지쳐 그랬다고 한 것. 두 번째는 김장훈이 언론 속성 모르는 바 아니고 광고 기사 묻혔다고 아무 시도도 하지 않고 포기하는 유형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추측할 수 있는 정황 중 하나는 그 사이에 위안부 문제를 이슈화하기 위해 애쓰다가 어떤 사람과 어떤 일이 있었다는 것. 여기서 위험한 추측. 시청에 모인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오늘 뉴욕타임스스퀘어에 걸린 기사 얘기를 다뤄달라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것 같음. 또는 이 비슷한 급의 일. 이 추측의 근거를 더 들면, 그 이후에 '더 이상 일이 불거지지 않게 조용히 해 주마' '인간은 미우나 국가적 차원으로 이런저런 얘기 안한다'라고 한 것. 죽을만큼 인간이 미운데도 절대 못하는 말이 있다면 국가적 손실을 부를 수 있는 말이라서일 것. 김장훈 입에서는 이 얘기 절대 안 나올 거임. 그냥 뒤집어쓰고 마는 스타일)


- 보도 후 이상호 기자가 상하이에서 들은 말 옮기면서 일 커짐. 일어나서 치료 받겠다고 겨우 기운냈는데 바로 다음날 무마용 기사 뜸.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파닭 먹으며 8시간 담소하고 병상 지킴], [싸이 이러다 쓰러지겠네]

- 김장훈 눈 뒤집힌 거 안 봐도 비디오. '이러려고 6개월만에 찾아와 밀고 들어왔나'라고 질러버림.

- 서경덕 교수, '이번 광고가 뉴욕에서 반응이 꽤 있다는 소식 전하자 김장훈이 유럽쪽 좀더 알아보라고 했다'는 글 올림.

- 김장훈 미투데이에 응원글 사이로 악플러 등장. 하루 종일 매달려 있던 악플러들 중 한 명이 '돈 때문에 이러고 있지만 미워하지 않는다. 죄송하다. 쾌차하라' 글 남기고 퇴장.

- 김장훈 임금 지급 밀려서 스탭들 불만 있었다는 정체불명 글 등장. 다시 스텝 한 명이 형은 우리 노후 대비해 보험 들어줄 정도로 챙겨주는 사람이고 다른 곳과 비교해 보수 적은 적 없다는 글 올림.


Posted by 새날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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